가정생활

나이값

피터킴^ 2006. 12. 6. 09:16
 

 

최원현의 수필집《날마다 좋은 날》이란 책.
어쩌다 그 많은 책 중에 이 책을 집었는지는 모른다.
나에게도 그런 ‘좋은 날’이 하루쯤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었을까.

 

그 수필집에 실린 여러 편의 수필 중에「나이 값」이란,
뭔가를 생각하게 하는 수필 한편이 내 눈길을 끌었다.
작가의 글을 조금 옮겨 본다.

 

우리말에 '나이 값'이란 말이 있다.
어찌 나이에 값을 매길 수 있으랴 만 이 나이 값이란 말은
참으로 많은 의미를 품고 있는 것 같다.
벼가 익으면 이삭의 무게에 의해 수그러드는 것 같이
사람도 나이가 들면 우선 겸손함이 생기는 것 같다.

 

조금만 바람이 불어도 쉽게 흔들리는 익지 않은 벼 포기처럼
젊었을 때는 곧곧하게 목을 세우고도 그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,
좌충우돌하며 쉽게 화를 내고, 쉽게 감동도 하지만
연륜이 깊어지면 참음과 다스림을 배우게 됨이리라.
그런가 하면 나이가 들었다는 것은 그만큼 노련해졌다는 얘기일 것 같다.

 

어둠 속에서도 정연하게 떡을 썰었다는 한석봉의 어머니처럼
자신의 하는 일에 전문가가 되어 어떠한 경우에서건
원만히 처리 할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가 될 수 있음이리라.

 

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나이가 들었다는 것은
죽음에 대한 준비를 할 줄 아는 사람일 것 같다.

 

무릇 모든 생명 있는 것들이 죽음을 두려워하기 마련이지만
죽음은 가장 진실한 그리고 어떤 경우에도 어긋나지 않는 자연의 질서요,
이 질서는 참으로 엄숙한 삶의 예식으로
그리고 가장 자연스런 자리 찾기로 우리를 찾기 마련이다

 

「나이 값」이란 수필은 작가가 어느 날 지인으로부터
나이보다 젊어 보인다는 말을 듣고 새삼 자신의 서 있는 위치를
확인해 보며 점검도 해 보는 자성적 수필이다.

 

나이보다 젊게 보인다는 말을 들으면
나이 든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분이 좋아질 것이다.
젊게 보인다는 말은 아직도 젊은 감각을 유지 하고 있으며
시대의 흐름에 뒤쳐지지 않는 세련미가 있다는……그런 말일까.

 

작가는 그것보다 ‘내가 혹시 나이 값을 하지 못하는 건 아닐까’
라는 방향으로 자신을 들여다 본다.
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데, 나는 고개 숙일 만큼 익었는가.
겸손이란 말에 내 자신이 얼마나 어울릴까.

 


고개 숙인다는 말을 작가는,

곧 다가올 죽음을 예비한다는 뜻으로 서술하고 있다.
죽음에 대한 준비를 하며 자신이 떠나고 남은 자리에는
어떤 흔적이 남을 것인가를 숙제처럼 가슴에 안고 독자에게 질문한다.

 

당신에게는 어떤 삶의 향기가 나는가?
이 땅에 살다가 떠나면서 남기고 싶은 삶의 향기는 어떤 향기인가?
그렇게 묻고 있는 듯 하다.

 

나로 말하자면, 기실은 그런 향기는 고사하고
의심, 미움, 게으름, 반목, 욕심, 빈정거림, 무관심, 분노, 짜증, 교만……
이런 속물의 악취가 진동하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이 더 앞선다.
더구나 죽음에 대한 준비라니……그런 건 생각조차 않고 사는데.

 

며칠전 비슷한 또래의 죽음을 보며

내가 앞으로 살 날이 그 얼마인지 알 수는 없지만
지금부터라도 그런 악취를 자꾸 치워가야 하지 않을까.
그러자면 마음을 곱고 곧게 써야 할 텐데,
그게 또 얼마나 어려운가.

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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